가치 있는 삶(요한복음 12:1~2)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생명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없어질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기 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선포하시면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부활의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베다니에서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을 위한 섬김의 삶이 가치가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당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이 있는 곳을 알면 신고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온 동네 소문날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잔치에 참여하는 중에 마리아가 노동자의 일 년치 임금과 맞먹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는데 전혀 아깝지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드린 것입니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을 드렸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냥 값비싼 향유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다는 것은 단순한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예수님께 바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자신의 생명, 자신의 인생보다 더 귀한 선물을 예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 부활의 약속입니다.

2.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이 가치가 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예수님과 함께 있다가는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만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죽음을 면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인정하는 순간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할 각오로 모인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몰래 숨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가까운 동네에서 모든 사람이 다 알도록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위한다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삶이요, 부활의 신앙입니다.

맺는 말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베다니 잔치에 함께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생명이 위협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영생을 이미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부활과 영생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부활은 현재형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활, 영생을 이야기할 때 미래에 일어나는 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죽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산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과 영생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아무 관련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생을 이야기할 때 영생은 이미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이미 영생을 소유했고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영생을 소유한 믿음의 자녀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합심기도제목

영원한 생명이 지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을 때, 가장 가치 있는 예수님을 위해 내 생명 다해 헌신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