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 계신 예수님(요한계시록 3:20~22)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 중에 주님께서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그림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자신들과는 별로 상관없는 그림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는 그림을 복음을 처음 듣고 반응하거나 처음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문은 분명히 초신자가 아니라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교인들,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한 말씀이며 더 나아가서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을 향한 말씀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우리와 함께 식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깊은 영적 교제를 말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고, 오히려 화려하고 부유하고 축복받은 교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말로는 주님을 찾고 주님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아무 변화도 없고 아무 교제도 없었습니다. 예배를 사모하지도 않고 그냥 기계적으로 예배 형식만 있고, 삶의 열매가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미지근하고 토해버리고 싶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내가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비의 심정으로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징계라는 말은 아이를 양육하고 훈련시켜서 바르게 서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섬기는 아들로 만들어간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문 밖에 계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 들이고 주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위해서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회개는 필수입니다. 죄가 없어야 주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철저히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죄와 등을 돌려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마음과 생각, 그 모든 행동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고 간단한 식사가 아니라 함께 만찬을 하자고 요청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생명의 복음을 들었다면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함께 예배의 자리, 기쁨의 자리, 영광스러운 자리에 열심을 내고 나오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랑으로 그들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냥 두드리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드럽게 계속해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맺는 말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는 표현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현재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문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과 함께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문 밖으로 몰아낸 주님을 다시 들어오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다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이정도면 괜찮다는 자기만족으로 신앙생활해서도 안 됩니다. 열심을 내고 회개함으로 주님과 깊은 영적교제로 기쁨이 넘치는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합심기도제목

문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잔치할 때, 날마다 천국의 기쁨이 교회와 가정에 넘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