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요한복음 1:14)

성탄절이 되면 성탄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설교 시간에 듣게 되고 또 나누게 됩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알려주는 천사의 이야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베들레헴에 들어갈 곳이 없어서 아기 예수님이 구유에 누우셨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 경배한 목자들과 동방박사들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세상적인 논리와 자연법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할 그 당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말씀’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들은 어떤 영적인 존재로서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로 이해하거나 창조와 관련된 어떤 존재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도 그 말씀이라는 단어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자, 하나님 바로 그 분을 나타내는 용어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표현은 영적이고 신적인 존재가 천하고 낮은 육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영적인 존재가 육신이라는 물질의 영역으로 완벽하게 오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그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말씀이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태초에’라는 표현을 들으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성경책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첫 책 바로 창세기를 떠올립니다. 창세기는 모든 만물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에서 ‘태초에’로 시작한다면 요한복음은 구원의 시작,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바로 그곳에 계셨던 말씀,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이 땅을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해 육신으로 오신 것입니다. 태초에 생명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신 예수님이 죄로 인해 죽은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3. 그 말씀은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진짜 이유는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말은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구약 출애굽 때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거처로 삼으시지만 우리를 위해서 성막이라는 곳을 택하셔서 그곳에 계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셔서 직접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맺는 말

성탄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우리 안에서 그 예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사람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그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교회 안에 거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없다면 나 자신이 정말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지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모셔드리고 그 분께 경배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합심기도제목

창조주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의 예배와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